Moo Duk 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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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태권도의 전신에 가장 가까운 단체라고 볼 수도 있다. 태권도가 창시될 당시 참여한 사범들 중 과반수가 이 도장 출신이었고, 태권도 현용 도복의 원형이 이 도장의 도복이었으며, 청도관과 오도관이 밀던 '태권도'라는 무명이 현재까지 확정되는 데에 큰 공헌을 한 도장이기도 했다.
당시 최대의 도장이었는데, 1953년과 1970년 사이에 전체 태권도 수련자의 약 75%가 무덕관에서 배웠다는 주장도 있을만큼 매우 큰 영향력을 끼쳤다.
1945년 11월 19일, 무술인 '황기'가 서울 용산역 부근의 교통부 청사를 빌려 개관한 것이 시초다. 지금의 교통부인 운수부 부설 형식으로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 명칭은 '운수부 당수도부'[14]였다. 무덕관은 용산 철도국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철도국 도장'이라고 칭했고 무덕관 하면 철도역을 연상했다고 한다. 황기는 1955년에 무덕관(武德館)이란 이름을 정하고 서울 중구 동자동에 독자적인 도장을 열었다.
황기는 무술 경력이 상당히 불분명한 사람인데, 본인 주장으로는 어린 시절엔 택견을, 커서는 (일제시대) 만주에서 철도 회사[15]를 다니면서 중국에서 태극권과 우슈[16]를 배웠다고 하며 자신이 무덕관을 개관하고 가르쳤던 건 중국식 세법(勢法)과 보법(步法) 등 중국권법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권법을 가르치는 도장에서 굳이 당수도부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황기 본인이 이에 대해 해명하길, 당수도가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뻥카쳤단 소리? 그는 직접 가라테를 배운 적은 없었지만 서적 독학과 청도관 등 다른 도장들과 교류를 통해 자신의 무술 또한 자연스럽게 가라테와 비슷하게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57년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서 권법을 참고해서[17] 전통무예인 수박에 영감을 얻어 수박도를 창시했다...는 게 황기 개인의 주장이다.
하지만 노병직과 최홍희는 황기가 발행한 화수도교본, 당수도교본, 수박도대감 등의 책이 후나코시 기친이 저술한 책들을 표절 개조한 책일 뿐이라고 혹평했으며, 황기의 출신 도장과 스승, 즉 무술의 계보와 연혁이 불명확하고 그가 실질적으로 도장에서 지도한 것은 중국 십팔기가 아닌 일본 쇼토칸 가라테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 황기가 쇼토칸 가라테 서적을 표절했을 가능성은 있어보인다는 주장도 있는데, 황기는 9대관 창립자 중에 유일하게 가라테 수련 경험이 없는 인물이었지만[18] 본인 주장에 의하면 가라테를 배우지 못한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오키나와 가라테를 접했다고 한다. 근데 책으로 무술을 배운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게 가능한 것도 아니고,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쪽에 가까웠을 듯? 즉, 가라테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 가라테 책을 쓰면 가라테 교본이 되지만 책 보며 흉내만 내던 사람이 가라테도 아니고 당수도니 수박도니 하는 제목 내걸고 책 쓰면 그게 표절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는 논리.
하지만 적어도 황기가 택견, 태극권, 우슈를 배웠다는 주장 역시 물증은 없더라도 심증상으론 신빙성이 꽤 있어보인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황기 본인이 가르치던 무술에 가장 가까운 단체인 수박도[19]의 경우 의외로 택견과 중국권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흔적이 보이기 때문. 대표적으로 이 영상의 경우, 기본 스탠스는 태권도처럼 다리를 앞뒤로 벌리고 서긴 했지만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하는 태권도 스텝과는 달리 수박도의 경우 제자리에서 뛰지 않고 양다리를 번갈아 굽혔다 펴며 상체를 앞뒤로 이동시키는 등 택견 품밟기의 굼실거림의 영향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손기술을 쓰기 전에 상체를 뒤로 크게 젖혔다가 허리를 퉁기며 체중을 실어서 치는데, 이는 의외로 송도수박의 특징이다.[20] YMCA권법부가 택견 기술을 가라테식으로 재해석하려 한 단체라면, (황기 제명 이전의) 무덕관은 택견의 운동원리를 가라테 스탠스에 적용하려 한 단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또한 태극권 특유의 상대를 밀어버리는 자세도 있으며 팔극권 특유의 러시안훅같은 자세도 있으며 무예도보통지의 권법 파트에 기록된 전소퇴, 후소퇴, 선풍각같은 기술 또한 존재한다. 설령 황기가 택견과 중국권법을 배운 적이 없다 해도 저 무술들에 대한 이해도만큼은 상당하며 최소한 비슷하게나마 자신의 무술에 적용이라도 해보려 한 성의는 확실하다는 뜻이다.[21]
이러한 전체적인 정황증거들을 종합해볼 때 황기는 전통무술과 중국권법을 배웠던 사람이지만, 가라테를 비슷하게 흉내(...)내서 전통무술, 중국권법을 섞은 가라테도 전통무술도 중국무술도 아닌 괴상한 무근본 짬뽕무술을 가르쳤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체 태권도 수련생 중 75%를 점유했던 걸 보면 무술인으로서는 몰라도 도장 사업가로서의 수완은 확실했던 듯?
이후 황기는 자신의 수박도를 고집하며 태권도의 통합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가장 소극적으로 참여했고, 참여하더라도 가장 먼저 탈퇴하기를 반복했다. 황기 입장에선 당시 무덕관이 가장 수련생이 많은데 통합하면 협회에서 자기 입지만 좁아질테니 뭔가 손해보는 것 같기도 했을 것이다. 허나 이 과정에서 태권도 통합을 지지하던 제자들과 불화를 겪어 1965년 3월 황기는 자신이 설립한 무덕관에서 제명되는 사태를 초래하고 만다. 태권도계의 스티브 잡스?
그래서 태권도계에서 이러한 황기에 대한 평가는 박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고[22], 사실 당시에 이미 맥이 끊긴 상태였던 수박을 끌어들였던 것 등은 다소 무리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황기 스스로도 택견은 형(품새)이 없어 무술도 아니라는 둥 논란이 될만한 오락가락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하지만 황기가 태권도에 남긴 확실한 유산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태권도 도복이 그것인데, 황기는 전통무예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전통문화 자체에 관심이 많았으며 일본의 가라테와 차별화된 한국 무술만의 고유한 도복을 개발하고 싶어했고 그 결과물이 위 사진에 나오는 특이하게 생긴 도복이다. 위 디자인은 무용총에 그려진 고구려의 복식에서 참고한 것이라고 하며 삼국시대 한복의 특징은 앞섶의 깃이 상체의 정중앙에서 떨어진다는 것인데[23] 황기가 고안한 무덕관의 도복도 앞섶 깃이 상체의 정중앙에서 떨어져서 띠의 매듭 라인에 맞춰진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무덕관 도복은 목파임이 띠까지 닿을 정도로 엄청 깊은 것에 반해 정작 고구려 복식은 (섶이 깊이 겹쳐지는) 가라테 도복처럼 목파임이 깊지 않은데, 사실 고구려 복식은 앞섶과 뒷섶이 비대칭이기 때문이다. 사실 뒷섶 깃은 오른쪽 옆구리까지 닿을 정도로 깊이 겹친다. 뒷섶 부분이 앞섶에 가려져서 섶이 겹치는 부분이 좁아 보이는 것이지 사실 고구려 복식도 가라테 도복처럼 섶이 깊이 겹치는 구조인 것이다.[24] 하지만 황기는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인지 뒷섶도 앞섶과 대칭으로 만들어 버렸고(...) 결과적으론 섶이 거의 겹치지 않는, 사실상 하오리 위에 띠 멘 수준인 상체의 중앙 부분이 시원하게 다 드러나는 이상한 도복이 되어버린 것. WT태권도 도복의 목파임이 가라테 도복에 비해 매우 깊은 것은 태권도 도복이 무덕관 도복의 직계후손이기 때문이다. 또한 황기는 고구려 복식을 참고하여 도복에 깃, 도련, 소매 부분에 검은 선을 넣었는데, 무덕관 도복의 이 검은 선 디자인은 이후 WT태권도, ITF태권도, 당수도, 합기도 같은 수많은 한국 무술 도복 디자인들의 원형이 된다. 사람마다 관점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태권도 도복은 디자인이 멋있다고 평가받으며,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태권도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가 도복이 멋있어서인 것을 생각해 보면, 황기가 태권도에 남긴 업적은 결코 낮다고만 볼 순 없다.
아무튼 황기가 전통무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당시 태동기였던 태권도와 결합하려고 한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당시 태권도계는 그러한 시도를 철저하게 배척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오늘날 와선 이게 문제가 되니 전통무술과 태권도의 연결고리로써 황기의 이름을 들먹이고 있다는 것.[25] 황기에 대한 이와 같은 태권도계의 이중적인 태도는 한국 태권도의 역사왜곡 문제와 궤를 같이 한다.
그렇게 태권도계에서 아웃사이더로 전락한 후 황기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수박도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무술을 보급했고, 무덕관 내의 (황기를 쫓아낸 세력 중) 가라테의 전통을 고집한 또다른 세력은 당수도로 활동하고 있다. 의외로 미국 내에선 큰 인지도를 가진 무술들이며, 각각 일명 Soo Bahk Do, Tang Soo Do로 알려져 있다. 수박도의 경우 웨스트포인트에서 유도와 함께 단 둘뿐인 정규과목으로 채택되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고, 당수도의 경우 최소한 2010년대 초반까진 미국에선 태권도 도장보다 당수도 도장이 훨씬 많았을 정도로 압도적인 인프라를 가지고 있었다.[26]
수박도야 상술했듯 황기 개인의 독창적인 창작 무술에 가깝다 쳐도 당수도는 사실상 가라테 짝퉁(...)이나 다름없는데 태권도와는 달리 최소한의 차별화도 하지 않았으며 그냥 가라테에서 간판만 당수도로 바꿔달고 전통무술이라고 우기는 단체라서 말이 많다. 심지어 형(카타)까지 똑같다. 순서도 안 바꾸고 그대로.[27] Kumdo 간판 달고 역사왜곡한다고 욕쳐먹는 대한검도회도 최소한 지들만의 독창적인 형은 있다 게다가 무덕관 시절엔 황기가 상술한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독창적인 도복을 개발했었는데 당수도는 가라테 도복에서 재질만 바꾸고 (무덕관 도복과 대충 비슷하게) 검은 선만 넣는 등 일본식 도복으로 다시 회귀한 바 있다. 사실상 한국 무술이 아니라 한국의 가라테 단체에 가까운 단체. 근데 미국에선 이상하게 척 노리스의 영향 탓인지 묘하게 당수도가 태권도보다 실전적이라는 인식이 강한 듯하다. 심지어 극진공수도의 실전성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대충 쇼토칸가라테에 태권도 발기술 추가한 실전무술 정도로 생각하는 듯?
어쨌든 황기가 이끄는 수박도와 독자노선의 당수도를 제외한, 김영택과 홍종수가 주축이 된 (태권도) 통합파가 이끄는 무덕관은 태권도를 창시할 때 그 쪽수에 걸맞게 정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대표적인 게 태권도의 무명 문제였다. 최홍희 문서에도 나오지만 최홍희가 '태권도'라는 무명을 지었을 때 당시 9대관 관장들 중 다수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종우 등은 대신 태권도와 당수도를 합친 '태수도'라는 무명을 밀었지만 9대관 중 무덕관의 김영택이 태권도 명칭을 지지했던 탓에 무덕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던 나머지 관장들도 어쩔 수 없이 최홍희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즉, 무덕관이 아니었으면 현재 태권도의 명칭은 당수도(...)였거나 태수도였을 거란 얘기. 태권도의 무명을 지은 최홍희 못지않게 태권도 명칭이 자리잡도록 알게 모르게 활약을 한 도장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무덕관은 무술계 내외의 여러 유명인사들을 배출해 낸 '명문도장'으로도 이름이 높은데, 인지도가 있는 사람만 해도 유명한 척 노리스[28], 멕시코 태권도[29]의 아버지 문대원 사범, 이란 태권도[30]의 아버지 강신철 사범[31], 정치인 홍준표[32], 프로레슬러 천규덕 등 태권도 내외에서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명인들을 여럿 배출한 바 있다. 비단 태권도뿐만 아니라 가라테 계열 무술 도장들을 통틀어 봐도 무덕관과 비견될 정도의 규모있는 도장은 송도관과 극진회관, 국기원[33] 정도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