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Do San Kwan

This is placeholder text. To change this content, double-click on the element and click Change Content.

5대관 중 유일하게 택견, 중국권법과의 연관성을 확실히 입증할 수 있는 단체이다. 지도자들이 택견, 중국권법을 배웠다는 확실한 입증이 불가능한 청도관, 무덕관과는 달리 YMCA권법부는 지도자들의 대다수가 택견, 중국권법을 배웠다는 계보가 입증이 가능하다. 물론 그만큼 주류 태권도와는 온도차가 있는 상당히 독특한 독자 노선을 취하고 있다.



파생관으로 창무관(彰武館)과 강덕원(講德院)이 있다.[34]



1946년 윤병인이 서울 종로 YMCA에서 권법부를 창설한 데서 시작한다.



기반이 되는 무술은 2가지로, 하나는 윤병인이 어린 시절 만주에서 배운 권법[35]과, 일본 유학 시절 배운 슈도칸(修道館) 가라테이다. 권법은 몽골계 사범한테서 배웠는데 본래 조선인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직접 사범의 집 마당을 쓸고 교습료를 남들의 2배(...)로 내는 등 정성을 보이며 배웠다. 그가 배운 형은 '단권', '장권', '토조산', '태조권', '태극권', '팔기권'과 '칠보대타', '일보대타' 등의 수련법이다. 이 중 대부분의 형들이 대타(對打)로, 2인의 약속 대련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로부터 윤병인을 가르친 몽골계 사범이 청나라 팔기군의 무술 사범이고 권법이란 몽골 팔기에서 연마한 군용 무술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이 '팔기권'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논쟁거리다. 중국 쪽의 권법이었던 건 확실한데, 만주족의 무술이라거나 북파권법의 일종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실제로 강덕원의 박철희 사범과 지승원 교수가 중국에 가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팔기권의 마지막 형인 대팔극이 곽전곽 계통의 곽가팔극권의 투로와 일치했다고 한다. 실제로 곽가팔극권은 만주 쪽에서 가장 세력이 큰 무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팔극을 제외한 나머지 형은 팔극권의 투로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정황증거를 종합해 볼 때 윤병인이 몽골계 사범에게 배웠다는 팔기권은 여러가지 중국권법이 합쳐진 청나라의 짬뽕 군용무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청나라뿐만 아니라 현대 중국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 바로 우슈인데, 중국국민당이 황푸군관학교에서 태극권, 남권같은 여러 전통권 투로들을 섞어서 군용무술로 가르친 것을 우슈의 시초로 보기 때문. 중국 각지의 전통권들의 여러 투로들을 취사선택해서 군용무술로 만든다는 개념은 중국 역사에선 특이한 게 아니었단 얘기다. 청나라의 만주 팔기군이 배웠다는 군용무술도 우슈 표연종목처럼 여러 중국 전통권들의 투로가 하나씩 섞인 무술이 아니었을까 정도의 추론은 가능하단 얘기.



참고로 (강덕원의 직계후손뻘 도장인) 다물원의 대팔극 시연을 본 한국의 팔극권사들은 '진각을 포함한 전체적인 팔극권의 운동원리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낮아 보이며, 사실상 자세를 흉내내는 쪽에 가깝다'며 혹평하는데, 이것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YMCA권법부는 팔극권 도장이 아닌 가라테 도장이었고, 무술이라는 게 똑같이 전수되는 것도 아니고 한번 사사될 때마다 무술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스승을 둔 문파, 유파별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데 사실상 가라테 도장에 가까웠던 도장에서 가르치던 팔극권 투로의 진각 자세가 정확하지 않은 것 정도는 애교에 가깝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료를 종합해 볼 때, YMCA권법부는 중국권법과 택견을 가라테식으로 해석하는 단체에 가까웠기 때문에 운동원리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다물원의 중국권법 형은 누가 '이건 중국권법 투로입니다'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냥 태권도 품새나 가라테 카타라 생각할 정도로 절도 있는 자세를 보인다. 즉 부드러운 자세의 (백학권을 포함한) 남권이 일본으로 넘어가서 절도 있게 바뀌어서 가라테가 된 것처럼 팝핀같은 독특한 운동원리를 가진 (팔극권을 포함한) 북파권법이 절도 있게 바뀌어서 YMCA권법부식 태권도가 되었단 얘기.[36]



창립자인 윤병인은 일본 도쿄 니혼대학에 유학을 했는데, 당시 조선인 유학생들을 괴롭히던 일본인 가라테부 학생들을 권법으로 혼내준 것을 계기로, 대학에서 가라테를 가르치던 슈도칸 가라테 개조 토야마 칸켄과 교류를 하고[37] 토야마는 윤병인을 가라테 5단으로 인정한다. 토야마 칸켄은 일본 송도관 가라테의 개조 후나고시 기친과 사동류의 개조 마부니 겐와의 스승인 이토스 야스츠네의 제자이다. 요컨데 후나고시 기친, 마부니 겐와와 동렬의 제자인 셈.[38] 이 때는 가라테가 오키나와에서 건너온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므로, 윤병인이 습득한 가라테는 실은 오키나와 테에 가깝다.



실제 YMCA 권법을 수련했던 사람들은 맨손 권법 이외에도 중국식으로 보이는 (찌르기를 주로 하는) 창술, 단검술[39], 오키나와 테식 봉술을 수련했다고 한다. 주로 수련하는 가라테 형은 (이후 한자 음독 기준) 평안1~5, 발색 대, 발색 소, 공상군, 명경, 반월, 노패, 진수, 기마(내보진, 철기) 1~3, 십수, 오십사보 대, 소 등이 있다. 봉형은 '윤선생(윤병인 선생)의 콘'이 있다. 현대화된 가라테와 달리, 오히려 1930년대 가라테가 일본에 전파되던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 듯.



윤병인은 수련 당시 오른손에 흰 장갑을 끼고 수련을 했는데, 이는 어린 시절 사고로 오른쪽 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경호원을 맡아달라는 요청도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오른손으로 경례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현재 제자들은 윤병인을 존중하는 의미로 오른손에 흰 장갑을 끼고 수련한다.[40] 아직 관이 존재하던 시절엔, 타 관들과의 대련시 주로 기술에 강세를 보였다고 한다.



(황기를 제외한) 다른 5대관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가라테에 자부심을 느끼며 딱히 다른 무술을 접목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던 것에 반해, YMCA권법부의 사범들은 특이하게도 택견을 적극적으로 배워서 택견의 발기술을 자신들의 가라테에 접목시키려고 노력했다. 박철희, 김병수 등 YMCA권법부의 여러 사범들은 택견 장인 송덕기의 제자로 들어가 적극적으로 그의 가르침을 받았고, 송덕기 또한 가라테 도복을 입은 YMCA권법부 출신 제자들을 아꼈다.



이렇게 '택견과 중국권법을 가라테식으로 재해석한다'는 YMCA권법부의 무술철학은 가라테만의 고유한 전통을 중시하던 다른 기간도장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그들만의 아이덴티티였다고 볼 수 있다. (황기 제명 이전의) 무덕관과는 비슷하면서도 정반대 느낌인데, 황기 사범이 가라테의 기술에 택견과 중국권법의 운동원리를 도입하려 했었다면, YMCA권법부는 택견과 중국권법의 기술에 가라테의 운동원리를 도입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이러한 흐름은 당시 주류 태권도의 시각에서 벗어난[41] 튀는 성향이었던 탓에 YMCA권법부는 태권도가 창시될 당시 5대관 중 마이너 신세를 면치 못했고, 실질적으로 YMCA권법부가 현재의 주류 태권도에 기술적인 면에서 끼친 영향은 상술한 뒤돌려차기와 고려 품새[42], 한수 품새[43] 정도밖에 없다.



YMCA권법부에서 배출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정통 무술인이 아닌 오랜기간 태권도 행정가로 활약하며 올림픽 종목 채택에도 공을 세운 김운용이다. 물론 YMCA권법부가 김운용에게 직접적으로 끼친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는 딱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일각에선 김운용이 세계태권도연맹 태동기에 태권도를 무술이 아닌 스포츠로 가닥을 잡았던 것도 송덕기와 연관이 깊었던 YMCA권법부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뇌피셜을 펴기도 한다. 송덕기는 택견을 무술이 아닌 민속놀이(, 즉 스포츠)로서 전승되길 원했고, 김운용은 이런 송덕기의 제자가 많았던 YMCA권법부의 전체적인 도장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던 거 아니냐는 주장. 물론 확실한 근거는 없다.



여담으로, 태권도랑 별개로 다른 동북아 무술사 측면에서 보아도 연구 가치가 높은 도장이다. 우선 윤병인 관장의 가라테는 오키나와 테가 일본식 가라테로 바뀌어가던 중간다리에 가까운 형태였고, 그가 배웠다는 팔기권이 진짜 청나라의 군용무술이 맞다면 중국 사학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44] 하지만 윤병인 관장의 팔기권이 진짜 팔기군의 군용무술이 맞다면 만주족의 전통무술과 청나라 군대의 훈련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지는 등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윤병인 관장이 월북한 이후 북한 격술 창시에 영향을 줬다는 점이나 택견 장인 송덕기의 1대 제자가 박철희 사범인 등 비록 규모는 작은 도장이지만 격동의 동북아 무술사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는 도장이라 볼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수련했다는 파사류(破邪流)의 창시자인 이강희(Kang Rhee) 사범이 여기 출신이라고 한다. 윤병인 관장이 가르치던 중국권법에서 상당히 달라지긴 했지만, 의외로 YMCA권법부의 초창기 모습을 제법 잘 보존하고 있는 편이라는 평을 받는다.


Our Member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