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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Moo K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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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인이 한국전쟁 여파로 월북하자 체신부 직원이었던 이남석은 1953년 10월 체신부 관계자의 도움으로 창무관을 개관하고 자신이 관장을 맡았다. 부관장은 김순배였다. 창무관은 영창고등학교의 '창'과 무도인의 '무'자를 합쳐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지만 박철희의 증언에 따르면 윤병인이 '빛날 창(彰)' 자에 '호반 무(武)' 자를 쓰는 창무관이 좋다고 했다고 하면서, 한국전쟁 이전에 창무관 명칭으로 단증을 발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사학자 허인욱은 이남석이 YMCA 권법부에서 수련을 하면서 체신부에 별도로 권법부를 설립한 것으로 여겨진다며, 윤병인도 체신부권법부가 YMCA 권법부와는 별개의 도장이었으므로 이남석의 부탁에 따라 '창무관'으로 단증을 발급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한다.[45] 창무관은 국내에 700여 개의 지관을 설치하고 해외에 450여 개의 도장을 개관할 정도로 성장했다. 1986년 이남석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김순배가 3대 관장으로 취임했다. 김병수 사범의 증언에 따르면, 1973년 최홍희 당시 ITF 총재가 브라질로 가는 도중에 휴스턴에 들러 이남석(당시 ITF 사무총장)과 함께 그의 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최홍희가 김병수 사범에게 "이남석 관장도 ITF로 왔으니 김병수 사범도 ITF로 와서 오른팔 역할을 해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46] 이를 토대로 김병수 사범의 평을 종합하면 홍정표 사범과 박철희 사범을 제외한 YMCA권법부 출신들은 당시 관통합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부와 명예를 쫓아 이합집산했으며 이 과정에서 창무관의 수련내용은 급속히 국기원의 그것으로 대체된다. 현재 김중영이 4대 관장으로서 세계태권도창무관총본관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명목상의 중앙본관일 뿐 실제 YMCA 권법부의 기법들을 전수하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서 창무관의 기법의 맥을 이어받은 도장은 이광희 사범과 서재영 사범이 1997년 설립한 연무재(硏武齋) 태권도가 유일하다. 특히, 이광희 사범은 창무관 8단으로 서울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던 1962년 서울시청 뒤에 위치했던 철도청 관사 옛 건물터에 있던 창무관 본관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태권도라 부르지 않고 '공수도창무관'이라고 칭했던 시절이다. 학계에서는 연무재가 창무관 기법을 변형하여 독자적으로 수련을 이어오고 있다고 평가한다.[47] 당연히 50년 전의 창무관 수련 기법을 그대로 이어오는 것은 아니고 그 이후 본인의 연구 성과를 합친 결과이다. 그러나 수련의 기저를 구성하는 가치관(무술로서의 태권도)과 손기술과 발기술의 조화를 꾀하는 것은 창무관의 기법과 상통한다.# 이광희 원장의 창무관 시절 및 팔극권에 대한 구술내용은 연무재태권도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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